사순 묵상 39 - Fr.김영수 헨리코

치명자산성지 | 2020.04.04 12:02 | 조회 251

[사순묵상 39]

❈사순 제5주간 토요일❈
2020. 4. 4. 치명자산성지

 

✣ 싸구려 연대감 ✣


이마에 재도 얹지 못하고 시작한 사순절 동안 곧 지나가리라 생각하며 기다렸던 부활절도

기약 없이 계속되는 중단과 격리의 시간 속에서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영적갈망을 놓지 않은 신앙인들은 이 시간마저도

하느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은총의 시간 속에서 지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해마다 바치던 사순절 새벽미사도 없이 지냈지만

사순절 내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교우들이 성지를 찾아 기도하고 영적인 힘을 얻는 모습을 보며

이 고독의 시간 속에서 우리를 키워내시는 하느님의 손길이 더욱 깊이 다가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소?” <요한 11,47>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의 여정을 시작하는 성주간을 앞둔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서 계신 고난의 길에 함께 서 있습니다.

라자로가 죽음에서 되살아난 뒤 예수님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는 분명하게 나뉩니다.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도 많았지만,

예수님을 불신하고 마침내 죽음으로 내몰기로 작정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지켜 주는 종교적 특권에 도전하는 예수님의 언행을 못마땅해 했고,

자신들이 누리는 백성들의 존경과 사랑을 잃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서로 모여 작당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하여 그날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 <53절>

예수님은 유다인 지도자들의 생각과 음모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들의 생각에 동조하거나 함께 어울려 주지는 못해도 조용히 입 다물고 있기만 하면

그럭저럭 별 탈 없이 지낼 수 있다는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한 싸구려 연대감에 자신을 맡기지 않으십니다.

위선과 허영으로 꾸며진 세계에 어울렁더울렁 자신의 삶을 섞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자기중심적이고 피상적인 욕망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하느님을 향한 고독한 여정을 멈추지 않고

그 고독 속에서 하느님께서 이루시는 일에 자신을 바치십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우리를 성장시키는 고독에 대하여 이렇게 성찰합니다.

‘비록 부질없고 싸구려 연대감이지만 고독을 그것과 바꾸고 싶을 때도 있고,

형편없고 보잘것없는 사람이라도 좋으니 겉치레라도 그들과 함께 고독을 나누고 싶을 때가 있는 법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런 시간들이 고독이 자라나는 때일지도 모릅니다.

고독이 자라나는 것은 소년이 성장하듯 고통스러우며,

봄이 시작되듯이 슬프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은, 이것 하나뿐입니다. 고독, 크고도 내적인 고독뿐입니다.’
고독은 겉치레와 위선의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하느님 앞에 서는 시간입니다.

우리에게 허락된 이 엄중한 고통의 시간은

우리 자신의 허영과 자기중심적인 삶이 만들어 낸 어둠을 대면하는 고독의 시간이며,

나약한 우리의 인간성으로 얼룩진 죄와 어둠이 정화되고 빛을 받아

하느님의 생명을 피워내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56절>

언제까지 지속될 지도 모르는 고통스런 시간 속에서 잔인한 사월을 지내며,

우리의 삶을 송두리 째 흔들어 놓은 이 어둠의 시간이

예수님께서 지켜냈던 그 견고하고 당당한 신앙의 품격을 지키고 피워내는 부활절을 준비해야겠습니다.

주님, 제 마음을 깨끗이 하시고 제 안에 굳센 영을 새롭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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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 오늘 싸구려 연대감에 머물지 않고 당신의 여정에 함께 하게 하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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