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묵상 46 - Fr.김영수 헨리코

치명자산성지 | 2020.04.12 08:59 | 조회 279
[사순묵상 46 마지막 글]

❈ 주님 수난 성토요일 ❈
2020.4.11. 치명자산성지

✣ 빈 무덤 ✣

십자가위에서 돌아가신 주님을 모신 무덤은 비어 있습니다.
무덤을 지키던 경비병은 놀라 달아나고,
예수님을 사랑한 막달라 마리아는 빈 무덤 앞에서 슬피 울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마리아의 말을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웅장한 팡파레 속에서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빈 무덤에서 시작됩니다.
마구간의 구유에 당신의 오실 자리를 마련하신 주님,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이 사셨던 예수님은
이제 당신이 묻히신 무덤조차 필요로 하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이 무덤을 꾸미고 비석을 세워 당신의 죽음에 붙잡혀 있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빈 무덤은 주님의 가난이 얼마나 철저한 비움으로 완성되는 지를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세상의 영웅은 화려한 무덤으로 죽음을 말하지만,
하늘의 영웅은 빈 무덤으로 부활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무덤을 향해 새벽에 달려갔던 막달라 마리아와 여인들도 예수님의 빈 무덤을 보고 슬퍼했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에 예수님의 시신이 없고 비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가장 가까이 지냈던 제자 베드로와 사랑하는 제자(요한)도 빈 무덤을 직접 보았지만
부활과 연결시키지 못하고 의아해 하며 돌아갑니다.
아직 그들은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 있는 것과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빈 무덤의 증인이기는 했지만 아직 부활의 증인은 되지 못했습니다.
무덤의 증인과 부활의 증인은 다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고 따르는 신앙은 무덤의 증인이 아니라 부활의 증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요한 20,9>

막달라 마리아는 빈 무덤 앞에서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을 끝까지 찾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증인이 됩니다.
피투성이의 주님을 품에 안으셨던 성모님은 깊은 침묵 속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어둠을 뚫고 새벽빛처럼 우리의 삶을 다시 밝혀 주실 주님을 기다리는 성토요일의 아침이 고요합니다.


❈❈❈
삶의 모든 소망을 잃었던 마리아에게 찾아오신 주님,
이 상실과 단절의 빈 무덤 앞에서 당신의 약속을 믿고 당신을 기다리게 하소서.
❈❈❈



[사순묵상]을 마치며

며칠 전에 오랫동안 신었던 낡은 털신에 흙을 채우고 담장 아래 피어나는 제비꽃을 옮겨 심었습니다.
남문 시장 신발가게에서 만난 만 원짜리 털신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내 발이 되어 주었고
이제는 낡아서 병아리들이 노니는 닭장 옆에 말없이 누워있었습니다.
내 발을 담아냈던 신발에 흙이 채워지고, 쓸모없이 버려졌던 한 줌 땅에 꽃이 심어지니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아름다운 꽃그릇이 되었습니다.
낡은 털신에 피어나는 꽃을 보며 부활의 신비에 놀라고 가슴이 뜁니다.

‘사순절 은총의 새벽미사’를 바치지 못해서 아쉬움이 컸지만
주님께서는 침묵 속에서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통해서 당신의 섭리를 보여주셨습니다.
십자가의 길에서 만나는 신자들의 기도,
말없이 성지 구석구석에 봄꽃을 심고 가꾸는 봉사자들의 아름다운 손길,
성지를 찾는 이들에게 변함없이 하느님의 사랑을 담아내는 카페 식구들의 따뜻한 마음,
가난한 성지살림을 위해 후원을 멈추지 않고 정성어린 미사예물을 봉헌해 주신 은인들....
그 따뜻하고 아름다운 마음들이 모여 하느님의 사랑이 피어나는 성지를 키워냅니다.

주님 부활을 기다리는 침묵의 성토요일에 그동안 걸어 왔던 사순절의 여정에 함께한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리며,
부족하고 어리숙한 마음들을 나누었던 [사순묵상]을 마칩니다.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만들어낸 무덤을 열고 이제 성지에서 얼굴을 맞대고
하느님을 찬미하고 신앙의 기쁨을 나누는 부활의 날을 기다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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